프로그램 비평

대박부동산

둘리소년 2021. 9. 9. 09:13

집으로 상처받는 영혼을 위한 진혼곡, 대박부동산

 

일단 이 드라마 재미있다. 지상파 드라마 시장에서 오랜만에 볼만한 드라마를 만난 느낌이다.

KBS 2TV 수목드라마 ‘대박부동산’(극본 하수진, 이영화, 정연서/연출 박진석/제작 몬스터유니온, 메이퀸픽쳐스)말이다.

각각의 복합적 사연을 가진 캐릭터 구성도 좋은 편이다. 자금이 더 넉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만듦새도 상당하다. 이 드라마는 공인중개사인 퇴마사가 퇴마 전문 사기꾼과 협력하여 흉가가 된 부동산에서 원귀나 지박령을 퇴치하고, 기구한 사연들을 풀어주는 생활밀착형 퇴마 드라마다. OTT로 글로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의 높은 눈높이를 감안한 듯, ‘K-오컬트’와 ‘부동산’이라는 이중 소구 코드로 대중의 시선을 끌고 있다.

 

K-오컬트의 지상파的 전환

일단 본 드라마의 외형적 장르는 오컬트다.

오컬트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을 일컫는데 숨겨진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오쿨투스'(occultus)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미국에선 60년대부터 심령, 귀신, 빙의, 퇴마 같은 이런 오컬트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들이 대중문화의 한 축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오컬트는 K-오컬트라는 변형으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단 ‘사바하’나 ‘킹덤’ 같은 장르적 특성을 활용한 작품이 주류다. 표현이 아무래도 지상파보다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음울함이나 잔인함, 심지어 고어에 가까운 연출도 지상파가 아닌 미디어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상파는 조금 다르게 오컬트를 대한다. 현실 풍자와 해결 장치로서, 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오컬트를 활용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부조리와 악행을 기존의 사회나 종교들이 이런 부분들을 해소하지 못할 때, 오컬트적인 부분을 도입하면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 ‘암묵적으로’ 원샷 해결에 동의하게 된다는 점을 극 서사에 활용하는 것이다.

‘대박부동산’의 오컬트는 그런 맥락이다. 오컬트를 통해 ‘원샷 해결’이 가능한 해결사이자 영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홍지아(장나라)는 무술 실력과 단호한 결단력을 가진 실력파 퇴마사로 극의 주인공이다. 오인범(정용화)은 뛰어난 관찰력과 논리력을 가진 전형적 사기꾼으로 주로 ‘빙의’를 담당하며 홍지아와 함께 퇴마 활동을 해나간다. 당연히 퇴마를 통한 ‘전후 맥락’의 청취 그리고 이를 통한 문제의 해결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루틴이다. 꼬인 실타래를 빙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보는 입장에서는 시원할 수밖에 없다. 비록 갈등 형성 과정은 고구마지만 결말은 사이다일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제작진은 자연스럽게 갈등을 풀게 설계하고 시청자는 속아주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리한 선택이다.

 

부동산, 그 갈구의 대상

집은 어머니고 고향이다.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서 생계를 위한 치열한 투쟁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 집은 이렇게 몸뿐 아니라 마음도 쉬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집에 대한 애착은 유별나다. 직장인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청약통장에 가입하는 것이다. 지금도 청약통장 가입은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진리에 가깝다. 세상살이 설움 중에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인들은 필사적으로 집을 소유하는데 매달린다. 한 설문조사에서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이 10명 중 8명에 이를 정도로 집에 대한 의지는 강하다. 그 결과 한국인의 자산 중에서 비금융자산 비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에 몰려있다. 미국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일상과 노후를 위한 한 개인의 평생 노력이 ‘집’으로 귀결된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집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당연히 집에 얽힌 사연도 개인의 추억도 많다. 한 사람의 삶과 분리가 어려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이상의 것이 집이다. 그래서 집은 누군가에겐 환희의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슬픔과 절망의 공간이다. 이야깃거리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대박부동산’의 에피소드는 보통 원귀, 특히 집의 구매 과정이나 상가 운영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귀들의 갈등 해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령 상가 주인에게 재개발을 이유로 억울하게 빼앗긴 사장은 이를 항의하다 건물주와의 몸싸움으로 죽게 된다. 젊은 사장은 원귀가 되어 건물을 맴돌고 건물주는 자기 잘못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건물 외벽에 숨겨둔다. 하지만 홍지아(장나라)의 기지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고 건물주는 법의 처벌을 받는 그런 흐름이다. 그밖에 집을 계약사기로 날린 가난한 엄마, 자신의 것을 억울하게 빼앗긴 작가도 ‘억울한 원귀’중 한 명이다.

집에 대한 대중의 공감대가 없다면 ‘원귀’가 그토록 집을 갈망했고 또 누군가를 그 집을 그렇게 탐했으며 결국 원귀는 집을 떠나지 못하는 설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그 집이란 것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님을, 그 안에 깃든 추억과 그 집을 갖고 싶은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통해 그곳을 소유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래서 그 원귀의 마음도 그들을 달래주는 과정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린 ‘부동산’이란 드라마 같기도 하고 어쩌면 현실 같은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히어로 혹은 다크히어로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과 사회 전반의 우울감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부동산도 애증의 대상이다. 화폐가치 하락으로 부동산 상승을 맛본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심리적 절박감이 생긴 사람 모두 불편한 시대다. 이런 인내와 우울함이 시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우릴 힘들게 한다. 난세의 영웅을 기다리듯 팬데믹의 한국에도 해결사이자 영웅이 필요하다.

 그 지점과 ‘대박부동산’이 조금 닿아있다. 물론 ‘대박부동산’의 홍지아는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다. 빙의건 퇴마건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 이야기란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라도 어디선가 속이 좀 풀렸으면 좋겠다. 드라마 속 원귀의 아픔을 달래주듯 오늘의 지난 함도 잠시나마 달래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히어로 또는 다크히어로가 필요한 세상이란 게 답답하지만, 누군가의 활약으로 오늘의 무력감을 잠시 잊을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드라마 속에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