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비평

관심경제의 콘텐츠, 오케이 광자매

둘리소년 2021. 9. 5. 18:22

Pay Attention!


‘집중해 주세요’ 또는 ‘관심을 가져주세요’ 라고 보통 해석한다.
그런데 뜯어보면 이상하지 않나. 왜 Pay일까. 관심을 지불하다? 관심이 통화도 아닌데 왜 지불의 수단이 될까.
살짝 이상하다.재미없지만 퀴즈하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의 3요소는? 맞다 토지, 노동, 자본이다. 돈을 벌려면 이 3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전통적인 생산 3요소 대신 4요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주인공은 토머스 데이븐포트(Davenport) 교수.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피터 드러커(Drucker), 토머스 프리드먼(Friedman) 같은 쟁쟁한 인물들과 더불어 '세계 3대 경영 전략 애널리스트'로 선정(2005년, OptimizeMagazine)되기도 했던 거장이다.
그는 <관심의 경제학(Attention Economy)>이라는 책을 통해 정보화 시대에는 새로운 생산요소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쉽게 말해 "정보 넘쳐나는 시대, 가장 희귀한 자원은 '관심'이라는 것이다. 즉 관심이 생산, 더 나아가 ‘돈을 버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 주장을 한 것이 2006년이었다. 아쉽게도 미국에서는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한국에서 그의 저서도 잘 팔리고 인터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옳았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그 생각은 2010년대 후반 콘텐츠 시장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관심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뉴미디어 시대의 통화는 ‘관심’이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관심을 받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셀러브리티’(유명인)가 된다. 타인의 관심을 현금과 맞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잡으면서 어린이들의 꿈이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것이 새삼스럽지 않는 세상이다.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수익이 공개되자 열풍은 더 거세졌다. 한국 유튜브 채널 중 보람튜브 토이리뷰는 월 160만 달러, 약 19억원의 광고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년층도 1인방송에 뛰어들고 있다. ‘코리아 그랜 마’ 채널을 운영하는 70대 박막례 할머니는 9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전 세대와 연령층을 아우르는 것이다. 광고시장의 돈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 결국 대중의 관심(구독자·조회수)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다
그때부터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 관심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안 크리에이터은 그 관심을 위해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대중으로 하여금 혐오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은 짧은 시간에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란 ‘팁’을 눈치챈것이다.
특출난 매력자본이 없는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시청자들의 방송 참여에 의존하는 토크·캠방을 개설한다. 사실상 시청자의 관심을 끌 콘텐츠가 없는 방송인 것이다. 이때 창작자는 ‘혐오 콘텐츠’의 유혹에 빠진다. 남녀, 진보와 보수, 자국민과 난민처럼 진영이 극명하게 나뉘는 대상에 대한 혐오는 고정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창작자 입장에서 혐오 콘텐츠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수익만큼은 확실히 보장되는 안정적인 수익원인 셈이다. 일반 창작자가 개설한 토크·캠방이 혐오 콘텐츠를 양산하는 이유다. 관심을 위해서 그 관심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무리수도 둘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되었다.

관종이 주도하는 관심경제의 개막
이처럼 한 교수의 성급한 주장처럼 보였던 생산요소로서의 ‘관심’은 스마트 디바이스의 보급과 소셜미디어 확산을 거치면서 시장에서 절대강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개인과 기업, 전 산업군이 생존을 위해 ‘관심’을 놓고 투쟁한다. 빅 브라더의 눈을 피해 숨기에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눈에 띄는 사람이 ‘관심 자본’을 쥘 수 있다.
냉소의 대상이었던 ‘관심종자’(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위상도 달라졌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능력 있는 ‘관종’은 선망의 대상이자 시장을 이끄는 키 플레이어가 됐다. 관종이 주도하는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상파 콘텐츠 시장에 스며든 관종의 기운
유튜브나 온라인에만 국한된 현상일까. 아니다. 예전의 막장 드라마는 이젠 막장 드라마 축에도 끼지 못할정도로 지상파의 드라마들도 많이 혼탁해진 상황이다. 지상파 콘텐츠를 보는 시선이 조금은 불편한 이유다. 자극엔 역치가 따른다. 자극은 더 큰 자극에만 반응할 뿐이다. 펜트하우스 같은 지독히 자극적인 작품의 시청률이 30%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무서울 지경이다. 지상파도 관심을 위해서라면 어떤 무리수도 서슴지 않고 시행할 수 있다는 결기가 보인다.  안타깝다.
그래서 제발 이 드라마만은 ‘자존심'을 지켜줬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 KBS주말극이다

관심은 받지만 관종이 되지 않는 콘텐츠

필자에게 있어 KBS2 주말극은 미스테리다. 대자본이 들어간 적도 슈퍼스타가 출연한 적도 없다. 줄거리도 익숙하다. 그런데 난공불락이다. 시청률에 있어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낸 적이 거의 없다. 한 때 tvN이 이 시간대를 공력하려고 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포기했다. 그 비결이 뭘까.  
KBS 주말드라마는 대부분 50부작 이상의 긴 호흡으로 제작된다. 이에 미니시리즈보다 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그들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채우곤 한다. 그래서 주말드라마 안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 손주에 증손주까지 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철부지 막내들, 희대의 악녀까지. 나이도 성격도 제각각 다른 인물들이지만 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는 비슷비슷하다.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막내 아들은 모두 훤칠한 얼굴에 뺀질거리는 성격을 자랑한다. 철없이 굴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막내 아들은 드라마 내에서 '성장캐' 역할을 담당하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부른다.
당연히  달달한 '로코커플'도 필수다. 이는 '주말드라마=가족극, 막장극'이라는 편견을 깨고 젊은 시청층을 주말 안방극장 앞으로 불러모은다. 주로 주말드라마의 막내 아들 커플이 '로코'를 담당하지만, 막내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막내 딸 커플이 이 역할을 대신한다.
최근 주말드라마는 굳이 대가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시키고 있다. 이에 등장인물이 좀 더 다양해지면서, 나이에 제한없이 '로코' 분위기를 풍기는 커플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이것으로 충분한데 하나 더 남았다.
KBS 주말드라마의 핵심은 대다수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의 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KBS 주말드라마 표 어머니들은 대부분 혼자 힘으로 여러명의 자식들을 키워내고, 힘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식들과 남편까지 어머니들의 속을 썩이기 십상이며, 그로 인해 병을 얻거나 스트레스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찾기도 한다.
드라마를 볼 땐 엄마를 힘들게 하는 다른 인물들이 미워보이지만 곧 우리는 엄마를 어떻게 대했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엄마를 닮아서 더 사랑스럽고 공감가는 주말드라마 표 엄마들, KBS 주말드라마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엄마 캐릭터들도 늘 등장할 것이다.
어떤가 관종을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다. 자극적으로 만들기가 더 어려운 구성이다
유튜브의 자극, 팬트하우스의 극단적 설정과는 거리가 있다. 관종이 원하는 관심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시청자들을 다독인다. 그래서 관심은 받지만 관종이 될수도 관종이었던 적도 없는 KBS 주말극이다

주말극 ‘오케이 광자매’를 통한 힐링의 시간
문영남 작가의 오케이광자매 역시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누굴 죽이고 시기 질투해서 망하게 하고 저주하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관심을 위해 관종이 되는 콘텐츠와 가장 거리가 먼 드라마가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의 성향이나 지향점이 같을 순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선은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TV를 통해서 자극만 얻게 된다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안타까움을 넘어 미안함을 느낄 것 같다. 그런 시각에서 더욱 빛나 보이는 순둥순둥한 KBS 주말극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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