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비평

트로트와 세이의법칙

둘리소년 2021. 9. 15. 10:05

세이의 법칙이란 경제학 이론이 있다. 지금은 이름만 남았지만 한때 고전 경제학의 핵심법칙으로 시대를 지배했던 이론이기도 하다. 
세이의 법칙은 쉽게 말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다. 추가적인 공급이 있으면 그로 인해 다시 한번 추가적인 수요가 발생해 공급물량을 소화한다는 개념. 사실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이 적용되기엔 한계가 많고 전체 시장에서 한 단면만을 설명하는 이론에 불과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세이의 법칙이 일상생활에서 적용될 때가 있다. 마치 지금의 트롯 시장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늘 속에 있던 트롯, 대중의 관심속으로
트롯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트렌디한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장르였다. 음정을 중시하던 대중가요가 비트 중심으로 바뀌게 되면서 5음계에 4분의 2박 또는 4분의 4박을 기본으로 하는 ‘촌스러운 트롯은 실버세대에 한정된 문화상품에 불과했다. 
아이돌 중심으로 가요계가 돌아가는 것 역시 트롯이라는 장르를 더욱 고립된 장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트롯은 그랬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은 아이돌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연습생 출신이 트롯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보컬트레이닝을 받고 탄탄한 댄스 실력을 갖춘 ‘가요인재’들이 트롯 시장에 진입하면서 그야말로 ‘때깔’이 달라진 것이다. ‘밤무대’가수들, 수 십년째 봐오던 그 이모, 삼촌들이 아니라 준수한 아이돌들이 트롯을 재해석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뉴트로 열풍 역시 한 몫 했다. 어느 시대에나 경기가 나빠지면 문화는 두 가지 경향을 보인다. 퇴폐적인 경향과 과거 회귀적인 경향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뉴트로라는 형식으로 ‘익숙한 것들을 재해석’하는 열풍이 생긴 것도 경기 하강국면에서의 과거회귀적 경향 때문이다. 트롯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삼촌이모들이 부르던 가요를 조카들이 트렌디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풀어내니 올드팬도 신규팬도 트롯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동시에 ‘트롯 아이돌’들이 스토리를 갖고 있는 점 역시 트롯 열풍에 기여했다. 스토리가 가진 힘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점이고 ‘트롯 아이돌'의 스토리 상당수는 실패의 경험을 담고 있어 그 자체로도 충분한 흥밋거리였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트롯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젊은 트롯, 그 조심스러운 태동 그리고 화려한 웅비
그렇게 트롯은 조심스럽게 예능계로 진입했다. 
하지만 누구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어 조심스런 시선 속에서 시작한 ‘미스 트롯’은 뜻밖에 폭발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진 ‘미스터 트롯’은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종편 사상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트롯은 자연스럽게 방송사의 주류 장르에 진입한다.
이어 ‘뽕숭아 학당’ , ‘사랑의콜센터’‘등등 스핀아웃 프로그램도 대박을 터뜨리게 되고 동시에 지상파에도 진입을 하면서 트롯은 이제 최고 인기 예능 장르로서 자리매김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혹자는 트롯은 촌스럽다라는 편견을 가질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건 시청자 반응이다. 조사결과를 보자.
해당 연관형용사는 한 트롯 프로그램의 방송콘텐츠 가치정보 분석시스템(RACOI)의 분석 결과물이다. 전부 긍정적 반응뿐이다. 높은 시청률을 이끌어 내는 배경에는 이런 행복함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수 있다.  또 이런 긍정적 형용사는 긍정적 인게이지먼트 로 이어져 광고효과에도 도움이 된다. 
장르로서 트롯이 방송가의 주류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트롯 공급은 새로운 트롯 수요를 창출한다
새로 시작한 보이스트롯의 개인 시청률은 3.7% 수준으로 그다지 놀라운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부분은 같은 트롯 프로그램인 사랑의콜센터 시청자들을 기준으로 측정할 경우 무려 19.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뽕숭아학당은 이 수준을 넘어서서 무려 30.4%의 다이나믹 타깃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즉 트롯의 시청자들은 여전히 트롯을 본다는 점이다. 이게 트롯 프로그램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타채널에서 만든 트롯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는 내 채널에서 방송하는 트롯 프로그램의 시청층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즉 타채널의 성공적인 트롯 프로그램의 런칭은 내 채널의 성공적인 런칭의 바탕이 된다는 점이다. 
자, 이제 세이의 법칙을 한번 더 떠올려봐야할 타이밍이다. 그렇다. 공급이 과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 그 공급 덕에 새로 창출된 수요는 새로운 공급을 이끌어내는 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장르에서 세이의 법칙이 이어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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